조성목 서민금융포럼 회장은 금융감독원 부국장 출신이다. 금융감독원에서 그가 맡았던 일은 주로 비금융권, 특히 서민금융과 관련한 감독 업무였다. 당시 대부업계와 사채업자들은 조 국장을 많이 두려워했다 한다.
금융감독원 18 년 재직후 퇴직했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학계, 현장 금융전문가, 소비자보호단체 등 서민금융 이해관계인들을 모아 서민금융포럼을 만든 것. 이들과 함께 효율적인 정책을 제안하고 실천하는 모임이다.
'서민금융'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해 조 회장은 "자기신용으로 대출을 받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6등급 이하이면서 연소득 3천만원 이하인 사람들을 위한 융자제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행 금융기관의 대출기준은 신용등급이 높은 사람들 위주로 설정되어있다"며"대출이 절실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금융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비판했다.
사채 피해자 보며 서민금융 필요성 느껴
조 회장은 16년 전 사채피해상담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이 길을 걷기로 확신한 그때일을 떠올렸다.
"상담 전화 받을 땐 저도 심장이 떨리더라구요. 한 여자가 전화로 '사채업자가 3시까지 돈을 만들어오지 않으면 경주에 있는 다방에 팔아야 하니 짐을 싸놓고 기다리라고 했다'며 떠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었죠."
조 회장은 그 즉시로 경찰에 연락해 여자를 보호해달라고 요청했다. 경찰이 현장에서 기다렸다가 여자를 차에 태우려는 사채업자를 검거했다.
그렇지만 3일후 전화를 다시 걸어온 사람은 그 사채업자였다. "야, 이 자식아! 너 때문에 유치장 잘 갔다왔다"며 금융감독원을 조롱하더라는 것.
경찰에 알아보니 납치가 미수에 그쳐 불구속 수사를 하기로 했단다. "납치미수도 큰 죄인데 풀어준 것도 이상하고 사채업자의 사무실을 압수, 수색했다면 여죄도 나왔을 것인데 석방된 것이 여러모로 석연치 않았다."
자신이 어디론가 팔려갈 지도 모르는데도, 무서운 사채에 손을 대야 했던 여자의 사정은 오랜동안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이후 금감원 재직동안 이런 일을 수없이 겪게 되었지만, 아직도 크게 나아지지 않은 현실은 답답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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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목 서민금융포럼 회장은 금감원 재직 당시 사채피해자들의 어려움을 보면서 서민금융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사진=이코노믹 리뷰 노연주 기자 |
그는 금감원에 재직하는 동안, 음성적인 사채업자들을 대부업체로 등록하도록 양성화했다.
사회적기업 `한국이지론`을 설립하는 한편, 휴면예금과 보험금을 서민들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하도록 휴면예금관리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한 때 이 돈이 국민행복기금의 재원이 되기도 했다.
"과거 휴면예금과 보험금은 금융기관이 잡수익으로 가져갔던 것들이다. 이 부분을 활용하도록 제도를 운용하니까 은행들은 귀찮았는지 예금주의 다른 계좌를 통해 휴면예금을 돌려주더라"며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대표적인 서민금융인 햇살론, 바꿔드림론, 희망홀씨를 제안한 것에도 깊이 관여했다. 이런 공로로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금융소비자 파산에 책임 있는 금융기관은 분담금 내야
'환경개선 분담금'은 오염물질을 일으키는 원인자에게 부과하는 부담금이다. 마찬가지로금융소비자가 파산하는 경우 파산의 원인으로 약탈적 대출이 확인되면, 금융기관이 분담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약탈적 대출이란 상환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고금리로 대출해준 행위를 말한다.
"신용불량자 양산에 제일 책임이 큰 금융기관이 카드사다. 금융소비자가 채무자로 전락하는 것에는 본인의 책임도 있지만 손쉽게 대출해 주고 고금리 대출을 해주는 신용카드사의 책임이 더 크다." 서민금융 지원을 다루는 많은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신용카드사의 책임이다.
조 회장은 "신용카드사가 가계부채와 관련해 책임있는 자세로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며 카드사를 직접 겨냥했다.
그는 "일종의 사회적 책임부담금으로 가시화할 수 있도록 화두를 던져보고자 한다”며“이 돈을 모아 서민금융활동의 재원으로 사용하는 것을 제안하겠다"고 말했다.
대출만 해주고 나면 끝인가?
"중요한 것은 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다. 대출기관의 질적 서비스를 개선해야 한다." 그가 제안하는 질적 서비스 개선안은 '금융주치의' 제도다.
"사람들이 왜 빚을 지고 고통받을까를 생각해보자. 때를 놓쳐서 그런 것이다. 연체 위기에서 돌려막기를 할 때, 대부업체를 전전하다 사채를 쓸 때, 신용회복을 신청할 때, 파산·회생을 신청할 때 그 '때'를 알려 주고 방향을 이끌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금융소비자의 경제적인 병에 대한 주기적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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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회장은 우리동네 금융주치의를 통해 경제적 병에 걸린 비자에 대해 선제적 치료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이코노믹 리뷰 노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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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일수를 쓰면서 이자 계산도 못한다. 100만원 빌려주고 120만원 갚으면 이자가 20%인 줄 아는 사람도 있다. 사실은 복리이고 일수이기 때문에 연 100%가 넘는 것 아니냐. 일수 쓰는 사람들 곁에서 이런 점을 얘기해 주고 방향을 잡아 줄 사람이 없다"
"사채는 무조건 불법이다. 법정이율을 초과해 이자를 받아도 불법이고, 등록하지 않고 대부영업을 하는 것도 불법이다. 고리를 받으면 3년이하 징역이고, 등록하지 않고 영업하면 5년이하 징역이다. 불법이므로 무조건 조정이 가능하다. 고소, 고발하겠다는데 계속 이자를 걷어 갈 사채업자가 어디 있나. 그런데 이것을 알려줄 사람도 없고 조정해 줄 사람도 없다."
그는 이런 금융주치의가 반드시 '맨투맨 상담'일 때 실효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금융주치의는 금융기관 퇴직자나 신용상담사, 금융복지상담사들이 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밀착형 금융지도사를 동사무소나 마을기업을 통해 일주일에 한번씩 직접 방문해서 상담토록 하면 좋을 것이라며 이 시스템를 정확히 '우리 마을 금융주치의'라고 불렀다.
"약탈적 대출에 책임있는 금융기관이 분담금을 내고, 이를 금융주치의의 인건비 재원으로 쓸 것을 제안한다"며 "서민금융포럼에서 이 문제를 본격 연구해 정부에 정책 제안하겠다"
실효성 있는 채무조정 되어야
현행 채무조정 제도에 대해서도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예를 들어 개인회생절차를 통해 5년동안 빚 변제를 완료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데, 그럼 법원이 채무조정을 잘못 하는 겁니다. 파산할 사람을 억지로 개인회생을 시킨 것이거나, 소득이 없는데 있는 것으로 믿고 개인회생을 허가해 줬다고 봐야 한다"
그는 신용회복위원의 개인워크아웃 제도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개인회생 보다는 개인워크아웃으로 채무가 조정되는 것이 옳다. 그런데 너무 상환 기간이 길거나 개인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인 조정안을 적용하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
청년 신용불량자, 구체적으로는 학자금 대출 피해자들의 문제로 이어졌다.
"대학생들이 학자금 때문에 빚을 내서 공부하고 졸업하고도 이를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어째서 학생들이 빚을 내서 공부를 해야 하느냐"고 개탄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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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목 회장은 부채를 진 청년들에게는 단기간의 조정을 통해 정상복귀할 수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이코노믹 리뷰 노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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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청년들이 이 빚을 갚으려고 투잡도 모자라 쓰리잡을 갖는다. 이들이 현실을 감당하지 못하면 그다음으로 가는 것이 다단계 업체이고, 술집, 불법대출의 세계다. 청년들의 채무조정은 워크아웃이든 개인회생이든 최소 2년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채무를 상환하도록 유도하고, 대폭으로 채무탕감을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터뷰 말미에 개인파산, 개인회생을 거친 면책자들의 현실문제가 화두에 올랐다. 이들은 이미 채무가 면책돼 경제적 활동력이 생긴 사람들인데도 서민금융 대상에서 소외된 것은 문제라는 것.
"대부업의 최고금리를 인하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지만, 이 때문에 돈을 빌리지 못하게 되는 서민들에 대한 대책도 함께 있어야 한다. 무조건 대부업 대출금리를 낮추기보다 금융회사간 경쟁촉진을 통해서 금리를 낮추도록 유도해야 한다."
경쟁을 통하면 금융기관들이 금리를 낮춘다고? 그들이 그럴 의지가 있을까? 그의 아이디어에 의문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랜 행정 경험을 통해 깊이 고민한 끝에 다다른 대안일 것이라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민금융정책에 대한 그의 열정이 인터뷰 내내 사무실 공간에 휘몰아쳤다.